의자는 8년 전에 산 IKEA의 MARKUS다. 살 때 18만원이었고, 그 당시 내 월급의 1/15이었다. 1년쯤 쓰면서 나는 이 의자를 사랑했다. 등받이가 메쉬여서 시원했고, 머리받침이 있어서 글을 쓰다 멍하니 하늘을 보기 좋았다.
5년 차에 메쉬가 찢어졌다. 7년 차에 쿠션이 꺼졌다. 8년 차인 지금, 등받이의 한쪽 팔걸이가 헐거워서 무게를 실으면 끽 소리가 난다.
그런데 나는 이 의자를 떠날 수 없다.

의자와 글의 관계
새 의자를 사려고 몇 번 시도했다. Herman Miller Aeron, Steelcase Leap, Humanscale Freedom — 시승까지 해봤다. 모두 좋았다. 그런데 집에 가져다 두면 글이 안 써졌다.
처음엔 새 의자가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. 그래서 한 달 정도 버텼다.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같은 책상에서, 같은 노트북으로, 새 의자에 앉으면 — 글이 어색했다.
낡은 의자가 익숙해진 게 아니라, 낡은 의자에 앉은 내가 익숙해진 거였다.
이건 작가의 미신이 아니라 인지과학이다. 글쓰기는 신체 기억(somatic memory)에 깊게 기반한다. 같은 자세, 같은 시야각, 같은 손가락의 위치 — 이 모든 것이 단어를 끌어내는 통로다. 의자가 바뀌면 통로가 바뀐다.
나의 다음 의자
그래서 나는 결심했다. 이 의자가 부서질 때까지 쓴다. 부서지면 — 똑같은 MARKUS를 다시 산다. 부품을 갈아 끼우는 마음으로.
새 모델이 나와도, 더 좋은 의자가 있어도, 같은 의자다. 의자는 작가의 도구가 아니라 작가의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.
FOOTNOTE — 시도해 본 의자들
Aeron은 너무 사무적이었다. Leap은 너무 부드러웠다. Freedom은 가장 가까웠지만 머리받침이 없어서 멍하니 하늘을 볼 수 없었다.
덧붙임 — 누가 물었다
"근데 그 MARKUS, 단종되면 어떻게 해?"
그러면 —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. 8년 동안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이미 충분한 답이다. 다음 8년은 다음 8년이 답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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